내 생각이자 가치관, 삶에 대한 고민, 사색의 과정’ 시리즈

왜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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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췌요약

인상깊은 구절의 일부를 제 마음대로 정리하거나 그대로 가져옵니다. 깊은 감동을 위해서는 아래 출처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A. 인생은 고통과 문제의 연속인데 왜 사는가

모든 동화는 “그래서 왕자님과 공주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만 실제 인생에 해피엔딩은 없다. 버핏도 돈 걱정을 하듯 누구나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문제를 끊임없이 만나며 고민하고 갈등하고 고통을 견뎌야 한다. 예를 들어 취업준비생들은 취업만 되면 ‘고생 끝, 행복 시작 ’이라고 생각하지만 취업 후엔 월급의 노예가 되어 아침 이른 출근과 밤 늦은 퇴근을 반복하며 일에 치여 살아야 한다. 못된 상사를 만나 마음고생을 심하게 할 수도 있다.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삶이 늘 어느 정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으며 고난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데 인생의 진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인생 조언을 3가지로 정리했다.

  1. 고통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진짜 해야할 질문은 무엇을 이룰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고통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3개월 안에 멋진 몸매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말고 마음껏 먹고 뒹구는 대신 늘어진 뱃살을 감수할 것인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운동의 고통을 견딜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다.

    고통 없이 살 수는 없다. 이 고통이냐, 저 고통이냐 선택이 있을 뿐이다.

  2. 의미가 생기면 고통은 잊힌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인데 우리는 왜 사는가. 의미 때문이다. (...) 무슨 일을 하든 대가, 혹은 고통이 따른다. 다만 그 일에 의미를 둘 때 우리는 고통을 견딜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힘은 의미에 있다.

  3. 가치관이 인생을 결정한다.

    우리는 의미에서 살아갈 힘을 얻기에 무엇에 의미, 즉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 중요한 것은 잘못된 가치관은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예컨대 테러리스트도 자신의 폭력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아울러 우리는 가치가 공격 받으면 고통을 느끼고 가치를 인정받으면 행복해진다. 이런 점에서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승진, 외모, 명성 등 자신이 통제하기 어려운 것에 가치를 두면 불행해지기 쉽다. 좀더 평안하게 살고 싶다면 정직이나 근면, 자존감, 겸손, 배려 같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에 가치를 두는 것이 좋다. [1]

B. 인생의 기본 값은 고통이다.

사는 게 만만하지 않다 .힘듦의 연속이다. 간신히 버텨 큰 힘듦 없이 살아간다 싶을 때,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일이, 또 다른 힘듦으로 찾아온다.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 왜냐하면, 인생의 디폴트 값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고통에서 예외인 인생은 없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고통은 숙명이다.

당신은 행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행복은 고통 없는 삶일까? 아니다. 행복을 인생의 기본 값으로 생각하는 데에서 불행이 온다. 항상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한 것일까? 아니다. 앞서 말한 바처럼, 인생의 기본 값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행복하지 못하면 죽을 것처럼 힘들어 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잠깐이라도 고통이 완화되면 행복한 것이다. 잠깐이라도 행복감을 느낀다면 행복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많이 행복해야 행복하다는 착각을 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인생은 고해(苦海)이다. 인생은 거대한 고통의 바다이다. 고통의 바다에서 태어났으면 좋든 싫든 건널 수밖에 없다. 고통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삶과 자유자재로 유유히 헤엄치며 사는 삶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피하기 때문이다.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고통 또한 우리가 부드럽고 친절하게 다루어 주기를 원한다. 인생의 기본 값이 고통이라는 것을 회피가 아닌 수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을 수용하고 부드럽고 친절하게 마주하면서, 그 참된 의미를 아는 순간부터 새로운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유유히 헤엄치며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수동적으로 받은 고통은 고통 그 자체이지만,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고통을 받을지 선택하는 것이며 무엇을 위해 그 고통과 마주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고통을 어떻게 인지하느냐,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고통이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고통을 두려워 하지마라. 고통을 회피 하지마라. 고통을 수용하고 인내하고 지혜롭게 마주하는 것이 인생이다. 고통 그 자체는 행복도 불행도 아니다.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는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고통을 다루면 행복이고, 고통에 짓눌리면 불행이다. 고통은 자기실현의 주제이다. 고통은 더 큰 자기를 담을 수 있는 기회이다. 사람은 고통을 마주하면서 그 고통을 다루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장하는 그 과정에서 행복이 온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당신은 지금 고통스러운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행복이 다가올 기회가 주어졌음이니 이는 축복이다. 잊지 말자. 당신의 고통은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다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2]

C. 피할 수 없는 죽음…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간이라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피할 수 없기에 "고통과 고난이 삶 곳곳에 만연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행복"이란 것도 고통으로부터 일시 벗어난 "고통의 유예" 정도에 불과하다고 쇼펜하우어는 지적한다.

키르케고르에게도 인생은 고통이다. "행복 저 깊숙한 곳, 가장 구석진 곳에서도 결국 절망이라는 불안"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무엇이든 적당히 하면서 살아가는" 체념적인(심미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그런 심미적인 태도를 벗어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태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나에 집중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키르케고르는 말한다. "무슨 선택을 내리든 '내'가 바로 그 선택에 따라 살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처럼 되려고 애쓰다가 그만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는다.

저자는 "궁극의 질문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대답 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며 "이 책이 그랬듯이 우리의 삶은 우리에게 간결하고 함축적인 결론 따위를 제시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것 하나만 기억하자고 강조한다.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3]

2. 내 생각

나는 요즘 고통스럽다. 취업 준비 기간이 다가오니 숨도 턱턱 막힌다. 신입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10시에 자고 4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4시 30분에 전날 공부한 것을 정리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건 단순히 패턴이다. 코딩테스트를 공부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자 만든 삶의 규칙이다. 오히려 코딩테스트를 통해 내 사고력이 향상되는 느낌이 들어서 행복하다. 물론 어려운 문제들을 보면, 내가 왜 사나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가끔은 이런 자괴감이 나를 독하게 만드는 요인인 것 같기도 하다.

1-A에서 마크 맨슨은 고통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나도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하기라는 고통을 선택했다. 이 공부하는 과정은 오히려 성장하는 느낌도 나서 좋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괴롭다. "미래에 취업을 못 하면 어떡하지?", "길 가다가 차에 치여서 죽으면 어떡하지?", "살면서 많은 것을 해보고 싶지만, 너무도 허탈하게 죽으면 어떡하지?" 등 내가 전혀 선택하지도 못하고 제어하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 나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가치를 찾아봐야겠다. 길 가다 차에 치여 죽는다면, 그냥 죽는 것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미래는 막막하다. 그렇다고 과거에서 바라본 현재는 막막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내 미래는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잔걱정 덕분에, 모든 순간이 고통스러웠다. 단순한 전공과목 해킹 및 바이러스 실습 과제도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가 만든 간이 사이트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조원들이 잠수타면 어떡하지?" 등. 그 과목만 그런 것도 아니다. 군대에서 전역하고 복학하며 과탑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다짐은 집착이라고 느낄 정도로 과하게 번졌다. 이해하지 못하고 외우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졸업작품을 시작할 때는 다른 팀들보다 훨씬 잘하기 위해서 3학년 여름 방학 때부터 인공지능을 공부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계속 공부했다. 남들은 이 정도면 우리 수준에서 잘했다고 그만하자고 했지만,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혼자서라도 졸업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다.

사실, 이 과정들이 마냥 불편하고 괴롭고 고통스럽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옥죄어 오는 느낌은 금방이라도 포기 버튼을 누르고 싶을 정도로 압박감이 심했다. 하지만 저렇게 미친 듯이 했기 때문에, 오히려 많이 성장했던 것 같다. 교수님의 연구원을 하면서 뭘 하는 건지도 모르고 했던 인공지능 공부는 내 졸업작품을 완성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맨땅에 헤딩하듯 했던 공부는 지금도 쉽게 헤딩할 수 있도록 두려움을 줄여주었다. 과탑을 목표로 달렸던 그 시기에 공부는 결국 하면 된다는 것을 느꼈고, 실제로 전 과목 A+로 1등도 해봤다. 그 경험을 통해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그때 했던 복습 방식을 좀 더 전략적으로 변형하여 코딩테스트 공부에 적용하고 있다. 연이은 조장 역할에 항상 일정은 빠듯하게 잡고, 남은 일정은 테스트와 마무리를 위한 일정으로 남겨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품이나 과제를 마무리하고 진행하는 PPT 제작 및 발표 연습을 진행하면, 온전히 그것에 집중하여 퀄리티가 올라가는 것을 경험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느끼는 고통은 어쩌면 먼저 취업한 친구들로부터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아서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남들과 비교하며 살아왔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다만, 결국에는 내 선택이고, 내 인생이다. 남들은 남이다. 나는 나다. 세상에 완벽히 똑같은 사람은 없다. 남들은 참고만 하고 나를 계획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내가 해야만 하는 것으로. 그리고 내가 할 수밖에 없는 것까지.

능동적으로 선택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오랜만에 내 안에 있는 글을 게워냈다. 스크랩해둔 글 중 비슷한 내용을 모아서 추리고 내 생각을 얹었다. 나는 요즘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그래서 나약한 소리도 많이 했다. 오히려 말로 내 생각을 표현할 때보다, 글로 쓸 때 더 정리가 잘되는 것 같다.

참고문헌

[1] 권성희. 인생은 고통과 문제의 연속인데 왜 사는가 - 머니투데이 (mt.co.kr). 머니투데이. (accessed Sep 8, 2021)

[2] 사공정규. 인생의 기본 값은 고통이다 - 경북매일 (kbmaeil.com). 경북매일. (accessed Sep 8, 2021)

[3] 피할 수 없는 죽음…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 매일경제 (mk.co.kr). 매일경제. (accessed Sep 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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