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록

(~25.06.15) 그동안 뭘 했고 앞으로 뭘 할건가 1부

작년 10월에 비전 개발자로써 커리어를 시작해 지난 2월 3번째 회사에 입사하여 현재까지 재직중이다. 그 동안 어떤일이 있었는지 간략하게 기록해보려한다.

첫번째 직장

작년 10월 경 10명 규모의 국가 과제 위주를 수행하는 자동화 검사설비 업체에 비전 개발자로 취업했다. 비전팀은 책임님과 나 둘이었고 darknet이라는 c기반의 백본과 yolo라는 객체 탐지 모델을 이용하여 대상 물체의 외관 결함을 탐지하는 방식의 솔루션을 제공하였다.

나는 관련 지식이 거의 전무했기에 교육이 필요했지만 너무나 작은 규모의 팀 + 국가 과제의 특성상 연말에 결산이 들어가는데 내가 입사한 10월말 부터 12월까지는 회사가 정말 바빠 케어를 받지 못한 채 스스로 관련 지식을 습득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 claude를 활용하면서 ai 서비스 활용 능력이 크게 늘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때 당시는 정말 하루하루 멘탈이 무너져갔던 기억이 있다.

멘탈이 무너졌던 요인으로는 11월 중순부터 프로젝트에 단독으로 투입될 것 이라는 예고에 대한 압박감과 타지 생활 적응 실패라는 두가지 요인이 악재로 다가왔던것 같다. 처음 겪어보는 기술스택과 방식을 한달 이내에 습득하기엔 쉽지않아 평일 주말, 낮밤을 가리지 않고 메달렸던 기억이 난다. 내 선생님이었던 claude의 크래딧이 부족해 구글 계정을 하나 더 생성하여 2개의 claude 계정의 굴렸던 기억이 난다.

이 때 안산 다문화 거리에 있는 고시원에서 지냈었는데, 다문화 거리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 + 좁디 좁은 고시원이 심적으로 편안함을 제공해야했던 집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여 몸과 정신은 하루하루 지쳐갔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예고됐던 11월 중반부터 12월 중순까지의 기한이 주어진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알루미늄 소재의 배터리 케이스 외관검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는데 단순한 객체 탐지 딥러닝 모델 학습 뿐만 아니라 카메라 + 촬영 환경을 뜻하는 광학환경, PLC와의 통신, 딥러닝 모델과 Winform 간의 tcp 통신, 카메라 트리거를 조절하기 위한 배선 설계까지 모두 담당해야했던 터라 정말 어느하나에 집중해서 학습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어찌저찌 기한은 맞춰야하니 그럴듯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는데 하드웨어 설비에 들어가는 프로그램 특성상 디버깅을 설비를 돌리면서 진행해야하는 여건때문에 첫 디버깅이 프로젝트 기한이었던 12월 중순이었던 기억이 난다. 무교지만 그 날만큼은 어떤 신이던 믿고 싶었을 정도로 기도메타로 디버깅에 임했던 것 같다.

기한이 분명 12월 중순이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1월 중순으로 미뤄저있었다. 이유는 국가 사업의 특성상 국가가 프로젝트 비용의 절반을 지원했으니 국가의 심사를 받아야하는데 설비에 하드웨어적 에러가 너무 많이 발생하여 12월 내 마무리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리고 원청과 협동하여 심사에 대비하기 위해 그럴듯한 시퀀스를 조작해야한다는 이유였다. 이 과정속에서 소프트웨어인 내 파트는 계속 밀리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해당 설비를 조작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12월 31일자로 퇴사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직장

공개할 수 없는 이유(궁금하시면 메일 주세요)로 첫번째 회사를 2달여만에 그만두고 1월에 바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첫번째 직장과 비슷한 일을 비슷한 규모로 진행하는 업체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 3주만에 내 실력을 300% 이상 끌어올려주신 책임님을 만났다.

새로 만난 책임님은 천재과에 속하는 분이셨던것으로 기억된다. 어떠한 문제를 마주했을때 해당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시며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시며 과제를 해결해오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약간 과장이 섞인 소개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 부분들을 체감하며 인정하게 되었다.

이전 직장과 가장 큰 차이점은 온보딩 기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온보딩 기간동안 책임님 주도의 ojt 역시 있었다. 이전에 진행하셨던 프로젝트를 따라가며 앞으로 사용할 기술스택과 작업 시퀀스에 대해 학습할 수 있게끔 엑셀로 정리된 파일을 주셨고 각 단계마다 코드리뷰를 받듯 책임님의 체크와 질문 폭탄이 있었다. 그 과정속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왜 이렇게 진행하셨나요 ? 다른 방법은 없었나요 ? 이다. 그런 과정을 몇차례 겪어보니 나도 체크를 받을때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한 흔적들을 준비하여 체크를 받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창의적인 다른 안을 제시받았을 정도로 생각치도 못한 방안을 내놓아 주셨다. 일전의 소개가 과장이 아님을 이 때 체감을 많이 했고 나 역시 이 때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력을 많이 길렀던 것 같다. 이대로 이 분께 1년만 배우면 정말 큰 성장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길지 않았고 나는 1달도 채 되지 않아 퇴사하였다.

이 바닥 업무의 특성상 파견, 출장이 잦다. 파견과 출장이 잦다는 것은 부대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보통은 회사에서 그것을 지원해주는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첫번째 직장도 그러했는데 두번째직장은 기본급 외의 수당이 제로였다. 심지어는 식대조차 지원이 되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내 심각한 단점을 알게됐다. 바로 압박감에 대한 대처가 전혀 안됨 + 그로 인한 멘탈적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거나 내가 완벽한 주도권을 가지고 일을 할때는 가진 능력 이상의 능률을 보이지만 강압적 분위기 +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어지면 능력의 1/5도 발휘를 못한다는 것을 첫번째 직장과 두번째 직장을 거치며 느꼈고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니 " 응 너 원래도 그랬어 " 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왜 퇴사했냐 앞선 두 문단에 묘사된 문제와 내가 이 회사에 온 이유인 책임님이 회사를 떠나실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됐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던 나는 식대조차 지원되지 않는 환경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식대만 지원되지 않는 환경이었다면 잘 아끼면서 그럭저럭 다녔겠지만 밥은 또 다같이 먹자가 회사의 모토라 매 끼니마다 만원 이상의 식비가 빠져나갔다. 내가 퇴사의사를 밝히자마자 당일 퇴사를 당했었는데, 해당 주에는 밥값이 없어 어머니께 손을 벌렸을 정도였다.

두번째 이유였던 강압적 분위기의 형성은 회사가 개발팀을 믿지 못한다는 뉘앙스의 말에서 시작됐다. 이 부분은 상세하게 말하기 좀 그래서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는데 앞서 말한 내 특징은 신뢰받지 못함 +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퍼포먼스를 낼 수 없다 이기 때문에 내 역량을 발휘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사실 앞서 두 이유는 부가적인 이유들이고 제일 큰 이유는 새 책임님이 사라지신다는 점이었다. 그 점 때문에 두번째 이유였던 개발팀에 대한 압박이 강하게 들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빈자리를 메워야하니) 뭐 그런것을 차치하고서 내가 이 회사에 오게된 이유엿던 책임님의 퇴사 소식은 나에게 더 이상 이 회사를 다녀야하는 이유를 사라지게 하는데 충분했다.

설 연휴가 매우 길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해당 연휴 시작전에 퇴사했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는데 다음에 만약에 이런일이 있다면 그러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취준생활이 시작됐고 생각보다 일찍 취업이 됐다.

-계속-

태그

이 글이 도움이 되었나요?

0분 전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달아보세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